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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김애란 소설집 ..

설은 김정원 2012. 7. 24. 13:22

 

저자 김애란

저서 (총 6권)
김애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작품을 2003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등이 있다. 그 외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비행운

 

언니이고 누나이며 친구 같은 작가, 김애란
여름밤, 선물처럼 보내온 나의 안부!

‘면모’를 확인하고, ‘너머’를 발견하게 하는 책! 김애란의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

김애란이 돌아왔다.

올해로 등단 만 10년 차가 되는 시간 동안 공백 없이 작품을 발표해오기도 했지만,

지난해 출간한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차세대 ‘젊은 작가’라는 수식어를 2010년대 대표 작가로 갈아치운 그녀다.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2012)을 가지고 왔다.

‘비행운’은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형식으로(飛行雲),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非幸運)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학평론가 박준석이 말했듯

“김애란 소설은 우선 안부를 묻고 전하는 이야기,

말하자면 하이-스토리hi-story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안부에는 개인적인 소소한 안녕을 넘어선 어떤 윤리”를 가지고

동세대의 실존적 고민을 드러내며 살아남은 자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친구처럼 곁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온 듯

이번 소설집에서도 김애란은 자신의 매력을 백분 발휘한다.

또한 좀더 많은 세대와 공간을 아우르며 ‘확장’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김애란 ‘너머’를 발견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대개 비행운의 꿈은 아이러니컬하게 구조화된다.

비행운의 꿈을 꿀수록, 그러니까 비행운에 대한 동경이 핍절할수록,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사이의 속절없는 거리에서,

작가 김애란은 우리 시대의 의미심장한 서사 단층을 마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물을 짠다.

그 이야기 궤적을 통해 우리는 2010년대

소설의 가장 진실한 숨결과 교감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학교 국문과 교수)

니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ㅡ 김애란과 나의 커먼센스

김애란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줄 듯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친구’ 같은 작가다.

그녀가 구사하는 어느 대목에서는 마치

같은 통점을 갖고 태어난 쌍둥이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십대’의 고시원 생활, ‘아이-노인’의 생로병사를 통해서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며 상처를 치유하려던

서사적 태도는 작가 스스로 서른을 훌쩍 넘어서는 동안

 진정한 자기 반성을 수행하는 ‘성장’을 겪는다.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만큼 그의 작품이,

또 그 스스로가 품이 넓어졌다.

이것은 분명 김애란의 미덕이고 김애란식 기품이다.

서른의 품격을 갖추었달까.

그러한 성숙의 막막한 심연을 성찰하려고 한 서사적 수고의

결과가 바로 세번째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서 겪는 성장통은 좀더 강력하다.

살아남은 자는 슬프다고 했던가.

오직 운이 좋아서 좀더 살아남았다고 했던가.

『비행운』에 실린 작품 속 주인공들을 보면,

어쨌든 아직은 살아남은 외줄 위에 선 듯 아슬아슬하기만 한 사람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취업을 했어도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인, ‘이전에도 채무자

지금도 채무자 좀더 나쁜 채무자’가 된 처지의 사람들.

한 번도 누구에게도 환영받아보지 못한 삼십대 후반의 택시기사와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받는 화장실 청소부.

그리고 주인공에 꿈속에서 등장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박스를 줍고 계”신 할머니. 자기 세대를 넘어 다른 세대까지,

김애란식의 함께 아파하기는 주인공들의 영역을 확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리켜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문제의 근원을 전면적으로

재탐사하려는 태도야말로 진정성의 벼리를 알게 한다.

인간과 사회 구조의 양면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산문적 탐문을 새로이 하려는 상상력과 서사 윤리는,

이 소설집뿐만 아니라 이후의 소설집에 우리가 더 많은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넓고 깊게 환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막막하고 막막한 존재들_김애란식 비극의 향연

『비행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쩐지 불행하기만 하다.

새벽 1시 아무도 없는 재개발 지역의 건물 잔해 위에서

양수가 터져 돌무덤에 주저앉게 된 임부나

크레인 위에서 체불 임금을 요구하다 실족사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당뇨 쇼크로 잃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홍수로 뒤덮인

흙탕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년,

그리고 첫사랑 때문에 발 들인 다단계 집단에 학원 제자를

끌어들이는 주인공 등 작가는 점점 상황이 나빠지기만 하는 존재상을

극적으로 서사화하면서, 비극적인 것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비극에의 몰입은 무엇보다 진정한 소통이 어려운

우리 시대의 우울과 소외를 자기 스타일로 혁파하면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진정한 소통의 자장을 넓고 깊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애란은 잊지 않고 그렇게 행복을 기다리느라 지겨웠던,

 비행운과 맞씨름을 하느라 힘들었을 친구들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다시 김애란 소설의 미덕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여러 편에서 김애란은 막막하고 아득한 심연처럼 결말을 구성”하며

“막막함의 광장 공포 내지는 불안을 매우 극적인 구성적 상징을 획득”하는데,

이 점이 바로 “소설집 『비행운』을 관통하는 공통된 서사 문법”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김애란식 비극’이라는 독보적인 한 장르를 갖게 되었다.

 작가의 말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당신도 보았느냐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름을 짓는다.
여러 개의 문장을 길게 이어서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기어코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어
한 번 더 불러보게 만드는 그런 이름을.

나는 그게 소설의 구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서른」의 한 장면은 내 가족, Y의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책속으로 추가>

몇백 원 더 비싸지만 부드러운 국산콩 두부를 먹고,

호기심에 일반 생리대보다 두 배는 비싼 유기농 소재의 패드를 써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좀 죄책감이 들었다.

생필품을 절약하지 않으면 돈 모으기가 힘든데.

씀씀이가 커 눈만 높아진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화장지를 끊을 때마다,

부드러운 두부 조직이 식도를 건드릴 때마다

 전에 없던 설렘과 만족이 찾아왔다.

그리고 만약 그런‘기분’도 구매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계속하고’싶다고 생각했다.


「큐티클」 p. 212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호텔 니약 따」 pp. 276~77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서른」 pp. 293~94

책속으로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다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수면 위로 아른아른 조용하게 빛나는 여름 햇빛이 보였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유혹하듯

화사하게 출렁이던 차안(此岸)의 얇고 환한 막.

나는 그 빛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거라곤 쥐자마자 이내 부서지는

몇 움큼의 강물이 전부였다.

생전 처음 겪는 공포가 밀려왔다.

아득하고 설명이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누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그 팔을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p. 41

A구역은 세상만사를 삼킨 심연처럼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채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곳은 한없이 깊고 어두워 보였다.

방 안으로 검은 나방 한 마리가 후드득 들어왔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형광등 주위로 나방이 어지럽게 푸드득 날아다녔다.

「벌레들」 p. 75

나무는 대낮에도 검은 실루엣을 드리우며 서 있었다.

이국의 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두 눈을 감고 ㅡ 그것은 동쪽으로 누웠다 서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 떼처럼 쏴아아 움직였다.

천 개의 잎사귀는 천 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 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

어떻게 죽는 것이 나무다운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종(種) 내부에 오랫동안

새겨져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고목은 장마 내 몸을 틀었다.

끌려가는 건지 버티려는 건지 모를 몸짓이었다.

뿌리가 있는 것은 의당 그래야 한다는 듯,

순응과 저항 사이의 미묘한 춤을 췄다.

「물속 골리앗」 pp. 85~86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테이프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저절로 뒷면으로 넘어간다.

짧은 사이.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 里)?”
“여기서 멉니까?”
용대는 조그맣게 “리 쩌리 위안 마?”라고

중얼거린 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겨울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약속처럼,

나뭇가지에 끝끝내 매달려 있는 은행 몇 알이

방금 막 지나간 택시를 굽어보며,

떨어지지도 썩지도 못한 채 몸을 떨고 있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p. 168

현대의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이

정적(靜的)으로 평화롭게 돌아갈 때,

그 무탈함이 주는 이상한 압도, 안심,

혹은 아름다움 같은 것이 공항에는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길게 뻗은 고속철도나 우아한 현수교, 송전탑에서도 느꼈다.

시커먼 타이어 자국이 밴 활주로 사이로 휘이? 시원한 가을바람이 지나갔다.

 정차된 항공기들은 모두 앞바퀴에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불어와 어떤 세계로 건너갈지 모르는 바람이었다.

몇몇 항공기는 탑승동 그늘에 얌전히 머리를 디민 채 졸거나 사색 중이었다.

관제탑 너머론 이제 막 지상에서 발을 떼 비상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 테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 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
「하루의 축」 p. 176